<이슈 따라잡기> ‘기본소득’이 건강과 돌봄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7월말 언론에서는 ‘기본소득’ 관련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놓고 정부와 정치권이 어떤 계기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지난 7월 중순, Chat GPT의 창시자이며 인공지능 기술의 선구자로 유명한 ‘샘 올트먼’이 중심이 되어 미국에서 실험한 결과(1)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는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5백억원 가량 사용했다고 알려지는데 이는 샘 올트먼이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결과를 놓고 우리나라 언론들의 해석은 자기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 어떤 보수언론(2)은 ‘허공에 태운 돈 5백억’의 ‘허무한 실험’이라고 하면서 기본소득을 표방했던 야당 지도자를 연관시켜 비난에 가까운 논조를 내세운 반면, 또 다른 신문(3)에서는 실험의 결과 ‘건강에 미치는 효과가 없다’는 단정적 표현까지 써가면서 그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거나 없었다는 식으로 축소하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샘 올트먼이 쏘아올린 ‘기본소득’의 평가 보고서는 미국 사회를 대상으로 3년에 걸쳐 모두 3천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결과라는 점에서 그렇게 쉽게 평가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 실험에서는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건강과 돌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담고 있어서 그 의미를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실험을 책임있게 수행하고 보고서를 내놓은 OpenResearch의 홈페이지(1)를 통해 주요 내용과 본 보고서를 확인하여 기본소득이 ‘건강’과 ‘돌봄’에 대한 영향을 살펴보았다.
실험 방법의 간단한 소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실험은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OpenResearch 라는 곳에서 진행을 맡았다. 지난 2020년 11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3년에 걸쳐 미국 텍사스주와 일리노이주의 주민 3천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상대적으로 저소득 그룹인 실험군 1천명에게는 월 1,000달러를, 대조군 2천명에게는 월 50달러를 제공하여 효과를 비교하고자 했다. 실험군에게 매월 50달러를 제공한 것은 지원금 규모의 차이를 두었지만, 지원금을 받고 못받고의 차이가 발생시킬 효과는 차단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실험의 결과로는 건강(Health), 생활비(Spending), 고용노동(Employment), 자기역량(Agency), 주거지 이전(Moving) 등 5개 분야를 핵심으로 분석, 제시하였다.
홈페이지에서는 각 분야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보고하고 있으나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기본소득이 ‘건강과 돌봄’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건강’, ‘소비지출’, ‘주거지 이전’의 3개 분야로 좁혀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건강(Health)에 대한 영향(4)
건강에 대한 영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조군과 비교해 볼 때 실험군의 참가자들에게는 입원건수 26%, 응급실 방문 확률 10%, 치과 치료를 받을 확률 10%, 일차의료 이용 확률 8%, 전문의 진찰 확률 6% 상승의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대조군 참가자보다 실험군은 의료서비스 이용에 매월 약 $20를 더 지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실험군 참가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과도한 음주를 20%, 진통제 등 처방되지 않은 약물의 남용을 53% 감소시키는 효과를 밝혔다. 특히 남성에게 효과가 더 컸는데 위험 상황에서 영향을 받을 확률의 41%, 과도한 음주 45%, 처방되지 않은 진통제 등을 이용하는 일수의 81%의 감소를 보고하였다.
셋째, 그러나 전체 참가자들에게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개선되는 직접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개선되었다는 점도 모든 참가자들에게서 나타난 증거는 아니라고 했다.
생활비(Spending)에 대한 영향(5)
앞서 살펴본 ‘건강’ 분야의 내용은 보건의료서비스의 이용과 행태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라면, ‘생활비’을 살펴보는 것은 보다 폭넓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에 대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보완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기본소득의 지원이 생활비에 미친 영향을 달러 금액으로 보면 평균적으로 한달에 $310의 지출을 늘렸는데, 음식($67), 임대료($52), 교통비($50), 타인에 대한 지원(Support to Others, $22), 아동 지원 및 돌봄(Children and Childcare $21)의 순으로 많았다. 가계와 공과금, 건강에 대한 지출도 매월 20달러 내외였다.
특히 실험군에서 ‘타인에 대한 지원’을 늘린 정도는 대조군에 비해 26%, ‘아동 지원 및 돌봄’도 13% 정도 더 높았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 작성자들은 기본소득의 지원이 수혜자 자신을 넘어 주변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파급효과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음식과 주거의 보장 수준을 높여 건강하게 생활할 환경에 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편, 타인과 아동에 대한 지원과 돌봄의 수준도 높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이 효과가 주변 사람들로 파급되어 건강한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주거지 이전(Moving)에 대한 영향(6)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주거지 이전의 가능성을 높인다. 이 실험에서도 기본소득 수혜자들은 주거 이전에 대해 관심이 5%, 대조군에 비하면 15% 정도 높아졌던 것으로 설명했다.
다만, 주거지 이전이 주택 및 이웃의 질이나 주거비용, 주거 안정성 등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현재 분석중이며, 추후 분석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어서 주거지 이전에 대한 결론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나 보고서의 내용 중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누가, 어떤 사람들이 주거지를 옮겼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68%가 여성이었으며, 31%는 가장 낮은 소득층이었고, 52%는 아이를 키우고 있었으며, 27%는 한부모였다.
이들에게 주거지 이전은 주거안정과 건강 등 삶의 질과 타인의 돌봄의 필요에 의한 사례가 다수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이 주거이전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건강·돌봄”을 위한 기본소득, 기본사회를 요구한다
이상을 통해 샘 올트만이 쏘아올린 기본소득의 효과와 영향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볼 때 이번 실험의 결과는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고 주목할만하다. 특히 건강과 돌봄에 대한 효과를 추측할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번 실험과 결과 보고서에 담긴 제한점과 특징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이번 실험의 결과를 왜곡하거나 절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기본소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그 결과를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소득수준이 건강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은 비중이 큰 중요한 문제이지만, 건강은 소득 이외에도 지역사회, 노동상태, 식생활, 정보접근성, 교육수준, 종교 등 영향요인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제한점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이번 실험을 통해 보편적으로 신체 및 정신건강 상태의 개선 효과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마치 기본소득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가 없는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섣부른 단정이다.
둘째, 이번 실험의 결과를 해석하는 것으로 좁혀서 본다고 하더라도 ‘기본소득’의 ‘건강’ 영향은 단지 ‘보건의료서비스의 이용’이라는 측면으로 한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음식과 주거, 타인과 아동의 돌봄을 포괄한 ‘생활비 지출(spending)’의 항목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주거지 이전(moving)을 통한 주거 환경의 변화와 효과도 건강에 미치는 영향으로 반영하여 종합하여 바라봐야 한다.
셋째, 이번 실험에서는 기본소득이 현금지원(cash benefit)의 특성이기 때문에 갖는 성격도 실험 결과의 이해를 위한 전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현금지원이 소득보장의 차원에서 사람들의 삶의 질, 특히 건강과 돌봄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번 실험을 담당했던 OpenResearch에서 “Cash increases possibility”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기본소득이 삶의 질 개선과 이를 위한 사람들의 선택의 가능성을 높이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현금 지원’ 만으로 담보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보건의료, 돌봄, 교육, 주거 등과 같이 ‘구매력’으로 좌우할 수 없는 ‘질’의 영역에 관한 문제들이 있다. 이런 서비스는 전사회적으로 생산과 배분을 계획해야 할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질적인 차원에서 ‘최저 기준’이 아닌 품격있는(decent) 삶을 보장하는 ‘적정 기준’이라는 점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은 현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이런 문제들은 ‘사회서비스’의 영역으로 다루어 지고 있다. 그러나 몇해 전부터 이를 ‘기본사회서비스’로 칭하여 ‘기본소득’과의 관련 속에서 ‘기본사회’로의 통합된 지향으로 칭해지기도 한다.
‘기본사회서비스’를 언급하는 것은 다른 차원에서의 의미도 있다. 설사 국가가 전국민을 위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해도 그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교육과 의료, 돌봄, 주거 등의 면에서 국가가 국민의 삶의 질을 지키고 보장해야 할 의무가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번 샘 올트만과 OpenResearch에 의한 ‘기본소득’ 실험은 건강과 돌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결과 만으로 좁게 해석할 수 없다. 기본소득의 의미와 중요성을 바탕에 두고, 더욱 나아가 ‘기본사회’를 향한 ‘사회서비스’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 보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참고자료>
(1) OpenResearch 실험 보고서 홈페이지
(2) 조선일보(2024.07.30.) [광화문뷰] 샘 올트먼의 ‘허무한’ 실험과 이재명의 기본소득
(3) 동아일보(2024.07.31.) 월 138만원 기본소득을 줬다... 미국에서 3년 실험해보니
(4) OpenResearch(2024.07.21.) Key Findings: Health
(5) OpenResearch(2024.07.21.) Key Findings: Spending
(6) OpenResearch(2024.07.21.) Key Findings: Moving